감정의 분출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분노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순간, 우리는 문제의 일부가 된다.
이 글은 ‘장천수를 폭력으로 응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차장오·장천수·오인택이 지태에게 가한 행동 — 따돌림, 음식물 투척, 신체적 폭행, 성희롱 — 은 명백한 폭력이다.
그들의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며, 피해자인 지태에 대한 보호는 반드시 필요했으나 이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그 분노를 곧바로 “장천수를 때려라”로 환원하는 건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폭력의 직접적 가해자는 분명하지만, 그들을 그렇게 만든 근본 원인 — 마리아가 제안한 지태의 부정 전과를 받아들인 부패한 권력 구조, 그리고 굴다리라는 공교육이 결여된 폭력화된 환경 — 을 제거하지 않으면 같은 폭력은 다른 형태로 반복될 뿐이다.
결국 개인을 때려 없애는 것으로는 구조적 폭력이 해결되지 않는다.
“힘에는 힘으로 맞서야 한다”는 말은 겉으로는 정의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폭력의 순환을 지속시킨다.
약자를 괴롭힌 장천수를 보다 강해진 주지태가 같은 방식으로 응징한다면, 우리는 그가 저질렀던 **‘약자를 향한 폭력의 합리화’**를 되풀이하게 된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보복은 일시적 쾌감을 줄지 몰라도 정의를 실현하지 못한다.
오히려 법과 공동체의 규범을 무너뜨려 더 큰 혼란을 초래한다.
정의는 분노로 실현되지 않는다.
공정한 절차와 책임 위에서만 지속된다.